범고래가 인간을 먹지 않는 이유

저는 고래를 참 좋아합니다. 아마 고래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죠. 간혹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의 고래영상을 보는데, 고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바다 수면 위를 점프하는 광경을 보며 잠시 고래로 빙의되어 광활한 바다를 점프하며 달리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또 귀여운 고래들이 수중 다이버들과 노는 광경, 그물에 걸려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습들은 그 어느 디즈니 애니메이션 만화보다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래에 대한 반전 [백상아리까지 잡아먹는 범고래] 영상을 보았습니다. 범고래라고 하면 사육사와 함께 서커스를 하며 꽤 순한 고래로 생각했는데, 실상은 바다의 포식자였다고 하네요. 백상아리뿐 아니라 다른 고래까지 잡아먹는다고 하니 놀랍습니다.


고래의 집단의식

그런데 이런 바다의 포식자 범고래가 인간만은 헤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거기에는 몇 가지 추측이 있는데요,

​[1] 백상아리도 잡아서 간만 먹고 버릴 정도로 식성이 까다롭기 때문에 굳이 맛없는 인간을 먹지 않는다.

​[2] 과거 인간들에게 대량학살을 당해서, 생존한 고래들이 번식하면서 인간과 싸움을 피하라는 정보를 대대로 물려주며 유전적으로 학습했다.

[3] 인간이 자기네들보다 우월한 고등동물임을 알고 존중하는 것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3번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1번의 경우 일단은 먹이가 아니라도 인간을 헤칠 수 있는데, 인간을 헤친 사례는 동물원에서 학대당한 범고래가 사육사를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 일이 유일하니까요. 2번의 경우 실제 역사적으로 인간이 고래를 대량학살 한 사실은 어떤 문헌에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고래사냥을 자행하고 있지만, 그 정보를 북극에서 남극으로 퍼져서 서식하고 있는 동족에게 똑같이 전파할 수 있을까요. 인간조차 오지 부족들에게 문명을 전파하기 어려운데 말입니다. 3번의 경우 고래가 워낙 공감 지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도 자신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니까요. 또 공감력이 발달한 사람들일수록 사람을 더욱 존중하죠.

​바닷속 수다쟁이라고 불리는 고래는 주파수로 소리를 내며 소통하는데 인간은 들을 수 없는 초음파라고 합니다.돌고래는 특히 대뇌피질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데 대뇌피질은 뇌에서 사고력, 언어, 감정, 기억력 등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인간이 아직 돌고래의 뇌를 완벽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발달된 대뇌피질은 복잡한 언어소통 체계와 감정 교류 능력 그리고 고도의 사고력을 갖고 있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가 됩니다.

​그런데 고래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은 고래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사냥과 학대를 일삼는 것일까요? 게다가 같은 동족인 인간을 헤치기도 합니다. 인간도 생존을 위협당하지 않을 만큼의 막강한 신체능력으로 지구 곳곳을 마음껏 헤엄치고 다니며, 경쟁하지 않아도 언제든 먹이를 구하며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지능의 순기능(공감)만 작동할까요? 그러나 정보의 바다에서 살고 있는 인간은 무수히 많은 정보에 영향을 받으면서 역기능의 오류를 일으킵니다.

 

인간의 집단의식

범고래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인간이 끊임없이 조작되고 가공되는 정보에 노출되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맥락 없이 나온 이유는, 요즘 열심히 읽고 있는 대니얼 카너먼의「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나온 점화 효과와 집단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상호 언어로 소통한다는 고래들의 생각 체계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지만, 바다의 왕자로 군림할 수 있는 큰 몸체와 높은 지능을 가졌기에, 인간처럼 나약함이 진화된 지능의 역기능을 발현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맹수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나약한 신체를 가진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 고도화된 생존 지능을 갖추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생존 지능을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정보를 가공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쪽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치, 경제, 언론, 미디어에서는 대중을 선동하는 심리전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대니얼 카너먼의「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나온 실험 내용입니다. 한 그룹에는 끊임없이 “돈”을 연상케하는 정보를 노출하고, 다른 그룹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었을 때 “돈”을 연상케하는 정보를 접한 그룹에서 도움을 주는 사례가 현저하게 낮았다고 합니다. 이 결과는 돈이 중심이 되었을 때 개인주의가 촉발한다는 것입니다.

개인화된 조직과 사회의 중심 정보는 ‘돈’과 관련된 정보가 아닐까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 조직, 가정에서 가장 많이 노출되는 언어는 무엇일까요? 한때 정권에서는 2030 표심을 얻기 위해 2030이 영끌하며 투자하고 빚에 허덕이며 힘겨운 세대로 몰이했습니다. 대안없는 이슈몰이가 끝나고 그 정보에 노출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사회를 각자도생 살아남아야 하는 무자비한 생태계로 인지하고 개인의 삶에 더육 집중하게 될수도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영향을 받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합니다.

​노출된 정보에 영향을 받아 자신의 결정력과 판단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기주도성을 갖는 일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부터 의도적으로 조작된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 선택하는 것들이 있는지, 정보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어림직작과 편향의 오류가 있는지 자주 점검해 보고 있습니다만, 스스로 그것을 케치하기 보다 다른 이의 관찰이 더 믿음이 갈때도 많습니다.

정보에 의해 순식간에 작동하는 어림짐작과 편향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많은 선택과 판단을 은밀하게 조종하는 나의 인지체계의 오류를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의「생각에 관한 생각」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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