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실패라는 창업의 세계로 뛰어드는 불나방들

내 인생은 쉼이 없이 폭주했던 기억뿐이다. 그래서 달리고 있을 때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창업을 결심한 순간은 작년 봄, 아침 출근길 아파트 단지를 나오면서다. 그 결심의 계기가 된 것은 직전에 본 대기업 임원 출신 50대 한 남성의 사연으로 ‘은퇴 후 삶의 질이 낮아진다’라는 취지로 다룬 뉴스였다. 퇴직금으로 프랜차이즈 치킨가게를 열었다가 망하고 쿠팡 상하차일을 하며 생계비를 번다는 그의 사연은 뉴스 취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퇴사 후 도전을 해야겠다는 자각을 주었다.

“도전과 변화”를 말하지만 결계를 치고 작은 바운더리에서만 “의미 찾기”를 하고 있던 내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저 평범하게만 보이는 사람들도 나보다 더 넓고 다양한 인생을 허용하며 용감하게 살고 있었다. 왕년에 명함 하나로 대접받았을 텐데 퇴직금을 모두 탕진하고 저스킬의 단순직종에 뛰어든 50대 가장이 존경스러웠다. 두려움을 넘는 용기의 원천이 꼭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겠단 고차원의 욕구가 아닌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1차 생계 욕구라 해도 그의 인생이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퇴사 후 창업 준비 기간까지 딱 일 년

6개월 동안은 창업 자금(플랫폼 개발비)를 모으기 위해 각종 정부 사업에 도전하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많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도전과 실패’의 연속이었다. 언제부턴가 선정되지 못했다는 통보 메일을 받는 것이 제법 익숙해졌다. 한정된 예산으로 운영해야 하는 정부 창업 지원 사업은 투자기준이 수익성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승자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템은 부정당하는 기분도 느끼게 한다. 하지만 한 아이템의 20페이지 사업계획서를 1~2분 만에 훑어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결정은 시장의 반응과 다를 수 있다. 상위 몇 프로만 승자가 되는 이 세계에 섣불리 좌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다만 실패로 드러나는 우리의 부족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6개월은 MVP로 시장을 검증하고 천천히 준비하자며 고정 수익을 담보로 하는 커리어 쌓기 좋은 언론사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했다. 사실상 휴식기였다. 그러나 좋게 해석하면 다양한 브랜드를 기획하고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캐릭터들의 사람들을 경험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나선형처럼 다시 시작점에 서있는 기분이다. 물론 1년이라는 시간은 ‘여기까지만!’ 허용하던 단단한 인생의 결계를 열어준 시간이다. 작은 세상에서의 경험으로 쌓인 자만심과 과잉된 자의식을 제대로 벗겨준 소중한 경험들이다.

우리의 제로점은 어디일까?

어제 파트너와 우리의 제로점을 이야기했다. 파트너는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잃을 게 없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단다. 그래서 실패를 해도 대미지가 없다고 편안했다. 난 직업 1, 직업 2 생애에서 기대를 갖고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꽃을 피우지 못했다. 여기서 꽃을 피웠다는 말은 성공의 의미가 아니다. 삶과 일이 하나가 되는 덕업 일치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삶과 일이 하나인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조건부였다. 내 노력이 생산성을 내거나 인정을 받을 때만 해당되었다.

직업 3을 준비하며 직업 1, 2에서 겪었던 스트레스를 다시 겪어내기도 한다. 그것도 밀도 높게 압축된 놈으로 말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이번 직업 3는 내가 주도한다는 것이다. 직업 1, 2에서 종결하고 싶은 일들을 다시 직업 3으로 가져와 활용하기도 한다. 또 직업 1, 2의 경험을 결합해서 사업 아이템을 고도화시킨다. 영원회귀 반복되는 인생일지라도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주자!’ 다짐한다. 내게 주어진 삶이고, 내 삶을 향한 예의니까. 그래서 어떤 결과도 수용한다. 삶은 내가 인식하고 의지를 낼 수 있는 영역 너머의 모호함과 우연성의 예술이다.

우리는 잃을 게 없는 제로점에 서있다. 그저 살아내는 것이다. ‘나’의 의지로 열심히 살아보는 거다. 그 무엇이 되더라도 말이다.

 

90%의 실패라는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창업인들

대부분 창업은 10%의 가능성을 보고 도전한다. 90%의 실패를 향해 뛰어드는 창업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잃을 게 없기에 90% 실패도 10%의 성공도 별 의미가 없다. 그냥 멈추지 않으면 실패하지 않는 것이고, 수익이 나지 않으면 다른 일로 수익을 만들어가면 된다. 누군가의 돈을 빌려서 창업을 한 것도 아니기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다.

그러나 많은 창업인들이 90% 실패라는 불구덩이에 뛰어든다. 물론 빛에 홀려 몸을 태우는 불나방의 인생이 그르다고 할 수 없다. 황홀한 빛 속을 향해 날아가는 친구를 보며 잔뜩 긴장하고 몸을 사리는 인생이 옳다고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창업을 했다면 꽃은 피워야 한다. 그래서 최근 읽은 책에 좋은 문구가 있어 창업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곳에 공유한다.

‘크기’로 회귀하려는 성장 욕구를 ‘깊이’라는 기준으로

작은 브랜드일수록 자신이 가진 역량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정답이다. 꽤 괜찮은 핵심 역량으로 시장에서 존재감을 확보했던 브랜드가 성급한 확장을 통해 망가지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한자리에서 장기 발효하는 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일이긴 하다.

일등이 하나밖에 나올 수 없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브랜드마다 존재의 이유를 명확히 하고 자신만의 영역에서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작은 브랜드는 그렇게 존재하고 성공해야 한다.문제는 성장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크기 지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브랜드, 영향력 있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크기’로 회귀하려는 성장 욕구를 ‘깊이’라는 기준으로 상쇄해야 한다. 깊게 자라는 작은 브랜드가 늘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이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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