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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게 반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ft.메타트렌드, 우리 앞의 새로운 변화)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30대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청년이 자신에게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해보려는 청년에게 내가 책을 추천할 정도의 자격이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추천을 해준 책이 개리 마커스의 “클루지”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다.
세상에는 성공 노하우 책이 넘쳐난다. 그러나 그런 유의 책은 대부분 치열한 토너먼트 세계에서 승자가 된 개인의 사례일 뿐이며,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법칙을 담고 있진 않다. 그래서 치열한 세상에서 승자가 되고 싶은 사람, 또는 그 과정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사람, 아니면 뭐라도 결실을 얻고 싶은 모두에게 통용되는 법칙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 오류투성이임을 인정하고,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 유연해지는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 오류투성이인 사고체계를 변화시키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한다. 불과 1년 전의 인사이트도 이젠 통용되지 않는다. 나를 믿어야 하지만, 나의 경험이나 판단은 의심해야 한다. 창업 준비를 하고 N잡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난 이미 알고 있다”라는 사람에게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들에게선 퇴행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역시 창업을 통한 자아실현 여정에 발을 내딛고, 낡고 오래된 모든 것을 완전히 혁신하고자 결심을 했다. 그 마음이 시크릿이 되었는지, 지난 시절 겪었던 불편했던 사람들의 인격이 합체된 사람들을 다시 겪어내야 했다. 그러나 내 오래된 사고체계는 반복되는 상황을 해결하기에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동안 사는데 불편함 없었던, 오히려 삶에 동력을 주던 나의 사고체계가 얼마나 오류투성이며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저 멀리 오아시스의 신기루를 보며 사막을 걷는 유목민의 희망착각 신기루를 거둬버린 기분이다. 그나마 하루하루를 지탱하는 일은 나의 뇌에 자동화된 생산적인 루틴과 해결해야 한다는 지시어뿐이었다.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은 어차피 계속 무한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적 변화의 길을 열기 위해 미친 듯인 책을 읽었다. 지난 3주간 읽은 책이 무려 4.74권이다. (5권째 2030 축의 전환은 74%)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그동안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행해 온 ‘해석-의미 부여-행동’의 사고체계를 다시 점검하고, 최신 버전으로 다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변화를 갈망하던 시간 동안 읽은 미국 미래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메타트렌드(위기 뒤의 희망, 우리 앞에 펼쳐질 새로운 변화)” 책은 내게 지겹게 반복된 낡은 것을 벗고, 새로운 길을 열수 있는 영감을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길을, 희망을 다시 디딜 수 있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우리에게 본질로 돌아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상황에게도 감사하다. 하마터면 내 관점으로 여러명의 빌런을 만들어낼 뻔했다.
24시간 내내 정서적으로 민감한 정보가 쏟아지는 하이퍼미디어 문화 속에서 우리에게 밀려오는 자극으로 우리의 인식 체계는 끊임없이 왜곡된다. 이때 우리는 감정과 도덕적 평가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정화되며, 이런 상태는 동시에 우리를 지속적 과잉 상태로 몰고 간다. 정서적 자극 과잉 상태는 도덕적 히스테리를 만들고, 도덕적 열기가 고조되면 신경쇠약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미래 능력을 위해서는 도덕과 윤리를 이해해야 한다. 도덕은 오로지 동일성 확인을 본질로 하는 정서 체계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향한 동정심이다. 도덕적인 관점은 쉽게 분노를 일으키고 해결책보다는 책임을 추궁한다. 그와 달리 윤리는 전체를 고려하는 사고체계로 결정을 둘러싼 전후 관계를 살피고 행동과 태도의 결과를 헤아리는 다차원적인 사고를 한다.
마티아스 호르크스의 “메타트렌드” 中
내적 변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할 수 누군가(사람 또는 조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의지는 의존이 아니라,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자신을 신뢰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또 무한한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은 상호 연결성으로 성장하고 진화한다. 그리고 그 연결성도 변화하며 진화한다. 이상화, 동질감으로 연결되었다가 그것의 유통기한이 지나면 일종의 전투가 시작되기도 한다. 하나의 패러다임에서 다른 패러다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과거의 연결성에서만 머물게 되면 전투는 끝이 나지 않는다. 반드시 자신을 재창조하고 새로운 버전의 연결성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뭔가 불편함을 겪고 있다면, 스스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인식하면 좋겠다. 편안함의 휴식기와 변화의 질풍노도의 과도기 모든 시간을 겪어내며 나다움을 회복하는 것 같다. 그 나다움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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